왕잠자리


왕잠자리의 유충

그 때가 아마 초등학교 4학년 무렵의 여름방학이었다. 방학 때면 으례 할머니 댁이 있는 부산으로 내려가 아침마다 개울짝을 하나 폴짝 건너뛰어 동네 야산을 쏘다니는 게, 나의 하루일과였다. 지금에야 전국지도를 보며 회상해 보니, 아마도 부산의 금정산 줄기였던 모양이다. 그 날도 날이 밝아 아침밥을 먹기 바쁘게 운동화를 이슬에 다 적시고, 팔 다리는 풀줄기에 다 할퀴고, 여기저기 옷에 잔뜩 보푸라기를 묻혀 혼날 게 뻔한데, 야산의 꼭대기까지 올랐다. 거기서 내가 몸서리쳐지는 감탄으로 목격한 것은 바로, 아침이슬에 적신 날개를 활짝 펴고 나뭇가지에 가만이 앉아 있는 녹색의 왕눈을 가진 왕잠자리였다!!! 어려서 그랬을까... 왜 그렇게 크고 멋지게 보이던지, 그리고 그게 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녀석의 왼쪽 앞날개가 절반쯤 짧은 기형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이미 날아가는 제비를 향해 포충망을 던질만큼, -동네 골목마다 제비가 먹이를 잡으려고 낮게 일직선으로 날던 광경이 선하다- 보통의 잠자리를 잡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그 커다랗고 푸른 왕잠자리라는 녀석은 처음 본 것이었다. 내 손에 잡을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었지만, 그 영롱하게 빛나는 날개를 향해 살그머니 손을 뻗었다. 첫날 밤에 신부의 옷고름을 만지는 신랑의 마음이라고나 할까? 혹 도망가지 않을까? 과연 내 손에 녀석이 들어올까? 콩당콩당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무척이나 신성한 마음으로 녀석의 날개를 마침내 붙잡았다!!! 이른 아침이라 잠이 덜 깨서였을까? 아니면 내 마음을 알고 그냥 잡혔던 것일까? 가만히 내 손에 녀석은 들어왔고 당시에 그것만한 보물이 내게는 없었다. 지금도 곤충의 찬란한 날개를 보면 당시의 조마조마한 마음을 가졌던 어린 시절 내 모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