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귀신  명주잠자리(Hagenomyia micans)의 유충

 

내가 책에서만 보아오던 개미지옥의 모습을 처음으로 자연상태에서 발견했던 것은 89년의 5월 중순이었다. 늘 다니는 우리 동네의 산에서 여기저기를 뒤지며 살피다가 우연히 산비탈이 무너져 내려 나무뿌리가 드러난 곳의 흙더미에서 그 뚜렷한 개미지옥의 함정을 발견한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무슨 자국인가 생각했는데 그 모양이 너무나 규칙적이어서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나뭇가지를 살살 찔러 넣어 흙을 뒤집어 보았다. 도대체 크기는 얼만하고 어떤 습성을 가졌을까? 그런데 완전히 흙을 다 뒤집었는데도 도대체 쉽게 뭐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녀석은 꼼짝도 않고 죽은 척 하고 있었는데다가 온 몸에 잔털이 많이 나 있어 흙가루를 잔뜩 바르고서 완벽하게 위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날카로운 눈은 피하지 못하고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게다가 이 함정 주위에는 조그만 곤충들, 특히 개미의 외골격 껍질이 널려 있어 비로소 개미지옥을 발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맨 먼저 찾은 녀석은 크기가 5mm 정도였는데 주위의 다른 큰 함정들을 파보니 15mm 짜리도 나왔다. 이 모래함정의 규모와 개미지옥의 크기는 비례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크기가 서로 다른 몇 마리의 개미지옥을 채집하여 집에 가져온 후, 체로 쳐서 고운 흙을 골라 살 곳을 마련해 주었다. 녀석들은 아직도 죽은 척하며 딴전을 피우는데 뒤집어진 놈은 순간적으로 홀딱 몸을 뒤틀어 제 위치를 잡았다. 개미지옥의 움직임에는 도대체 부드러움이 없어 break dance를 보는 듯하다. 이제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들은 꽁무니부터 흙을 파고 들어가서 나중에는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는데 깊숙이 들어가지는 않고 흙으로 제 몸의 위만 덮을 정도로 하여 지나간 흔적을 흙위에 남겼다. 하루가 지나자 각자 자신의 집을 마련하였다. 우선은 가장 바깥에서 함정의 규모에 해당하는 둥근 흔적을 만들고 차츰 반시계 방향으로 돌면서 안쪽으로 들어오는데 자신의 몸 위로 쏟아지는 흙을 커다란 큰턱으로 휙휙 삽질하여 밖으로 던져 버린다. 점점 중심으로 들어오자 가운데에 흙더미가 많이 쌓여 남아 있었는데 그 흙더미 가운데를 태극무늬 그리듯이 가로질러 무너뜨리고 쏟아진 자기 몸 위의 흙을 밖으로 날렸다. 그 힘이 굉장해서 큰 돌멩이도 곧잘 던져 버렸다. 다 파낸 후의 함정은 원뿔을 뒤집어 놓은 형태가 되었다. 개미지옥은 그 중 한 곳에 몸을 숨기고서 커다랗고 날카로운 턱을 180도로 벌린 체 가만히 사냥감을 기다리며 휴식에 들어간다. 밖에서는 이 숨어있는 모습이 도무지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 녀석들의 식성이 까다롭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쌀을 먹으며 흔히 집안을 날아다니는 명나방 한 마리를 잡아 시험적으로 함정에 던졌다. 그런데 함정에 던져진 순간부터 나방은 꼼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무슨 사태가 벌어졌나 싶어서 핀셋으로 나방의 날개를 살짝 당겼더니 놀랍게도 개미지옥이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큰턱으로 꽉 물고는 끌려나오지 않으려고 나와 줄다리기를 하였다. 명나방은 함정에 떨어지자마자 바로 개미지옥에게 물려서 독이 몸에 퍼져 꼼짝하지도 않은 것이었다. 며칠을 굶었는지 조그만 나방은 금새 바싹 마른 껍데기만 남아 개미지옥의 집밖으로 휙 던져졌다. 그리고 배를 채운 녀석은 허물어진 집을 수리하였다. 먹이가 함정에 빠져 단번에 개미지옥에게 물리면 큰 사태가 일어나지 않는데 용케 큰턱을 피한 놈은 밖으로 달아나려고 마구 발버둥치며 함정을 망가뜨린다. 이 때 개미지옥은 무너져 내리는 흙을 큰턱으로 날려 먹이가 다시 미끄러지게 한다. 하지만 이것은 먹이감의 정확한 위치를 알고 하는 행동은 아니다. 오히려 엉뚱한 곳으로 흙을 날려버리는 수가 많다. 또 먹이의 크기가 작을 때는 함정 가운데로 미끄러져 내려왔다가 개미지옥이 먹이가 다 내려온 줄도 모르고 흙과 함께 휙 집어던지는 바람에 재수 좋게 탈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로 먹이는 명나방과 개미, 거미, 바퀴, 쌀바구미 따위를 주었다. 동작이 빠른 바퀴나 힘이 강한 개미는 여간해서 쉽게 걸려들지 않는다. 또 5mm 크기의 어린 개미지옥의 함정은 규모도 작고해서 빠졌다가도 쉽게 탈출하고 만다. 강한 상대일 때는 큰 개미지옥도 단번에 물지 못하고 물었더라도 치명적이지 못하면 달아나는 수가 있다. 어떤 개미는 약 10초 이상 잡혀 있다가도 탈출한 적이 있는데 결국 이 개미는 멀리 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독이 퍼져 몸이 비틀리면서 죽고 말았다. 큰 먹이를 잡은 개미지옥은 자신이 애써 만든 집을 다 망가뜨리면서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먹이를 아예 흙 속으로 끌고 들어가 버린다. 저항하는 개미는 때때로 사납게 개미지옥을 물어뜯으려고 하는데 흙 속으로 끌려 들어가면 흙만 잔뜩 턱에 묻을 뿐 개미지옥과 상대가 되지 못한다. 바퀴는 완전히 흙 속에 파묻은 체로 체액을 빨았다. 조그만 꼬마거미는 함정도 망가뜨리지 않고 제자리에서 먹어치웠다. 개미지옥이라는 이름은 개미사냥을 잘 해서 붙었겠지만 사실 일본왕개미나 곰개미같은 종류는 개미지옥에게도 감당하기 쉽지 않은 상대이다. 또 명주잠자리과의 다른 종류 중에는 이런 깔때기 모양의 집을 짓지 않는 종류도 있다. 한편으로 함정을 만들기 전에도 먹이가 근처를 지나가면 그 상태에서 먹이사냥도 한다. 배가 부른 녀석들은 굳이 커다란 함정을 파지 않으며 단지 제자리에서 턱 위의 흙만을 가볍게 집어던진 후에 기다리기도 한다. 육식을 하는 습성 때문에 동족포식(共食)하는 일도 있는데 평소에는 흙밭을 지나다닐 때에 움푹 파진 동족 개미지옥의 함정근처에 오면 쉽게 감지하고는 방향을 바꾼다. 그러나 가끔 부주의한 녀석은 함정에 빠져 꼼짝 못하고 잡아먹힌다. 가끔은 개미지옥이 큰턱을 머리위로 젖혀 자신의 꽁무니를 슬슬 긁기도 하는데 흙먼지가 묻어서 가려운 모양이다. 전에는 이 개미지옥을 "서생원" 이라고 부르며 아이들이 가지고 놀기도 하였다고 하는데 요즘은 시멘트가 깔리고 포장된 길만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므로 쉽게 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녀석들이 흙위를 지나가며 남기는 자국들은 무슨 바닷가 모래작품을 보는 것처럼 아름답기까지 하다. 개미지옥들은 6월 중순과 하순사이에 고치를 만들었다. 얼마 전부터 함정은 만들지 않고 수많은 기어다닌 흔적만을 남기더니 마침내 변화의 시기가 다가온 것이다. 개미지옥은 꽁무니에서 실을 내어 흙알갱이를 이어 붙이며 지름 15 mm정도인 동그란 경단 모양의 고치를 만들었다. 4~5일 후에 그 안을 절개하여 보니 온통 흙투성이던 개미지옥이 말끔하게 깨끗한 상태로 들어 있었다. 아직은 용화하지 않은 상태로 단단한 머리와 턱은 더 이상 활발하지 못하고 몸 안쪽으로 접은 체 꿈틀거렸다. 고치의 내벽은 풀을 발라 놓아 마른 것처럼 여러 겹의 껍질 같은 것이 있어서 흙알갱이로 만든 고치가 제법 단단하였고 내부는 아주 깨끗하였다. 고치가 생긴 지 보름 후에 다시 안을 살펴보니 번데기가 된 개미지옥이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들어 있었다. 유충시절의 큰턱과 몸의 껍질은 한쪽 구석에 놓여 있었고 온통 하얗게 되었는데 양쪽 겹눈만 검었다. 납작하고 퉁퉁하던 복부는 조금 길고 날씬해졌으며 새로 생길 날개와 새로운 다리가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또한 개미지옥의 얼굴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새로운 잠자리 형태의 큰 머리가 나타났고 굵은 더듬이도 새롭게 등장하였다. 그러나 건드려보니 성질만은 여전해서 큰턱을 가위질하며 물려고 덤벼댔다.

마침내 고치에 들어간지 20일 만에 명주잠자리가 탄생하였다. 우선 둥근 모래경단의 고치 상단부가 구멍이 나며 번데기 상태의 명주잠자리가 몸을 밖으로 반쯤 내민다. 그 상태에서 우화가 진행되는데 모래 경단에 몸을 끼운 체로 껍질을 벗어버린다. 가위 같은 큰턱이 이 두꺼운 모래고치를 찢어내고 까만 눈에 이미 회색의 얼룩덜룩한 색깔을 갖춘 성충이 기어 나온다. 이 때 몸길이는 복부가 최대로 신장하여 유충 때의 몸길이보다 무려 4~5배 정도 길어진 명주잠자리가 된다. 자신의 허물을 뱀껍질처럼 모래경단에 걸쳐 남겨놓은 뒤 녀석은 재빨리 주변의 수직으로 된 줄기나 벽에 기어올라 서서히 날개를 펴며 말린다. 먼지 속에서 작은 벌레의 체액이나 빨아먹던 퉁퉁하고 흉한 몰골의 개미지옥이 크고 날씬하며 펄펄 공중을 날아다니는 명주잠자리가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몸이 어느 정도 단단하게 굳으면 번데기 시절의 대사산물인 배설물을 꽁무니에서 내버린다. 이것은 쌀알크기의 연한 갈색 배설물인데 매우 딱딱하고 깨어보니 속이 꺼멓고 지독한 냄새가 난다. 그 동안의 체내에 쌓인 노폐물을 번데기 상태에서는 내보내지 못하고 농축시켜 우화 후에 바로 한 개의 덩어리 형태로 배설하는 것이다. 7월에 낮은 산의 계곡 주변 잡목림에는 이렇게 우화하여 날개를 단 명주잠자리들이 그늘 속을 나풀거리며 꽤나 많이 날아다닌다. 또 제 짝을 찾고 산란을 하는 한살이가 되풀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