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게벌레

집게벌레는 보통 인가의 어둡고 습한 장소에서 쉽게 발견되는 곤충이다. 물론 야외성인 종류도 있지만 민집게벌레 (Anisolabis maritima)나 끝마디통통집게벌레 (Gonolabis marginalis), 애흰수염집게벌레 (Euborellia annulipes)  등은 대표적인 가주성 집게벌레로 흔히 집에서 발견된다. 이들은 낮에 숨어있다가 밤이 되면 기어나와  여러 가지 잡식물을 섭취한다. 내가 맨 먼저 길러본 곤충이라고 기억하는 것이 바로 집게벌레이다. 큰턱이 집게로 된 사슴벌레가 아닌 꼬리털이 집게로 된 집게벌레, 과거 일기장을 들춰 보니, 처음에는 이것저것 잡동사니 벌레들을 모두 한 유리병에 때려 넣었나 보다. 거미, 먼지벌레, 집게벌레, 꼽등이, 개미 등등 집안 구석구석을 뒤져 왠갓 것들을 모두 잡아 어떤 일이 벌어지는 가를 살펴본 것이다. 그 와중에 강한 생명력으로 버티며 끝까지 생존하는 모습을 보여준 집게벌레는 인위적 공간에서도 잘 살았고 알도 낳아 새끼까지 길러냈다. 숨을 곳을 마련해 주지 않으면 집게벌레들은 스스로 굴을 파고 땅속에 은둔지를 만든다. 집게벌레는 특유한 냄새가 나는데 깨끗한 새 환경을 만들어 주어도 하루만 지나면 곧 다시 독특한 냄새가 난다. 먹이는 주로 바퀴를 때려잡아 주었지만 이들 사이에는 동종포식이 너무나 흔하게 일어났다.


몸은 검게 빛나고 다리는 적황색인 민집게벌레 가운데 워낙 싸움을 잘해서 내가 이름을 붙여준 녀석은 '흑투사' 라는 암컷이다. 집게벌레의 암수는 대개 그 집게모양을 보면 알 수 있다. 흑투사는 무척 육식성이 강했고 날카로운 집게를 이용해 곤충사냥을 잘 하였다. 하루는 녀석이 성숙한 커다란 꼽등이를 잡아먹는 광경을 보게 되었다. 예리한 집게로 정확히 곤충의 급소에 해당하는 첫째, 둘째다리 사이의 가슴복판을 눌러 잡았다. 꼽등이는 물려서도 놀라운 뒷다리 힘으로 펄쩍 거리며 뛰어 집게벌레를 떨쳐버리려고 했는데 녀석은 끝까지 집게를 놓지 않았고 결국 몸이 마비된 꼽등이를 다 잡아먹고 말았다. 물에도 강해서 수영을 아주 잘 했다. 집게벌레의 알 크기는 1.5mm 정도에 윤기나는 흰색을 띠는데 20-25개쯤을 뭉쳐 놓는다. 암컷은 이 알을 이리저리 물고 핥으며 계속 자리를 옮긴다. 어미의 보호 아래 보름쯤 후 새끼들이 태어나게 된다. 그런데 어느날 병 청소를 하던 중 땅 밑에 있던 흑투사의 알집을 건드렸고 녀석은 갑작스런 환경변화에 놀라 알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뒤 굴속에서 꼬리의 집게만 내밀고 아무 움직임이 없는 녀석을 핀셋으로 끄집어 내보니 이미 죽어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