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곤충의 탐사

늦털매미의 탈피각

온대지방에서 가을은 1년을 주기로 나고 죽는 한살이를 가진 곤충들의 최고 전성기이다. 또한 봄과 여름에 왕성한 성장 단계를 밟은 곤충들이 추운 겨울이 오기 전에 구애와 짝짓기를 마쳐야 하는 중요한 번식철이기도 하다. 이들을 탐사하기 위한 요령은 본격적인 곤충 채집 활동과는 성격이 다르다. 작고 약한 곤충은 사람의 조그만 움직임에도 놀라 몸을 숨기거나 활동을 멈추기 때문에 제대로 관찰하기 위해서는 여간 조심스럽게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본래의 자연스런 활동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인간의 시각을 지극히 작은 곤충의 눈으로 전환시켜 바라보는 것이 곤충 탐사의 묘미이다. 필드에 나서기 전에 곤충에 대해 충분히 공부하고 맘컷 여유로운 맘으로 자연을 바라보면 그들은 자신들의 무한하고 비밀스런 세계를 저절로 공개할 것이다.

가을에 가장 대표적인 곤충이라면 우선 잠자리를 들 수 있다. 사람 얼굴의 코에 해당하는 부분에 쌍점을 가진 두점박이좀잠자리를 비롯하여 흔히 만날 수 있는 좀잠자리류는 가을이 깊어가면서 배가 빨갛게 되는 특징이 있다. 뒷날개가 보다 넓적한 된장잠자리는 수수한 색이며 많은 수가 떼를 지어 하늘을 잘 날아다니는데 공중에서 모기류 같은 작은 곤충을 잡아채는 광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밀잠자리와 큰밀잠자리는 암 수 사이에 밀, 보리 짚의 색깔처럼 분명한 성적 차이를 나타낸다. 물가 주변에서 조용히 기다리면 잠자리들의 하트형 짝짓기와 치열한 영토싸움을 볼 수 있다. 실잠자리 중에서 성충으로 월동하는 묵은실잠자리와 가는실잠자리는 거의 마른 나뭇가지와 흡사하게 생겼다.

메뚜기목의 여러 곤충은 '소리' 라는 물리적 수단을 사용하여 암수가 서로 유희한다. 여치과에 속하는 긴꼬리쌕새기를 비롯한 쌕새기 종류는 낮에 가는 풀줄기에 몸을 붙이고 숨어서 소리를 내며 메뚜기과의 참어리삽사리 등도 잎사귀 위에서 뒷다리를 앞날개에 비벼 소리내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 시기에는 암수가 서로 붙어 있는 모습이 잘 발견되는데 섬서구메뚜기, 밑들이메뚜기, 벼메뚜기 등은 새끼처럼 크기가 조그만 수컷이 엄마처럼 보이는 커다란 암컷의 등에 장시간 올라타고 있다. 이들의 실질적인 교미시간은 그리 길지 않지만 정자경쟁에 있어 우위에 있고자 하는 수컷은 암컷의 등에 오래 붙어서 사실상 다른 수컷의 접근을 훼방한다. 사마귀, 좀사마귀, 왕사마귀 등도 가을의 대표적인 곤충이며 이들을 놀라게 하면 몸을 일자로 쭉 뻗어 풀줄기처럼 보이려는 위장술이나 또는 앞다리를 접고 몸을 세워 당랑권처럼 위협하는 행동을 보게 된다. 먹이를 기다리며 매복해 있는 사마귀 앞에 가만히 다른 곤충을 잡아 앞에다 던지면 번개처럼 사냥하는 장면도 볼 수 있다.

매미목의 애매미, 참매미, 말매미 등은 초여름부터 나타나 가을 초까지도 보이는데 나무에 붙어서 내는 소리는 저마다 고저와 장단이 독특하다. 매미 소리가 없는 여름은 상상이나 가능할까? 이 중에서 늦게 나온다고 해서 이름도 늦털매미는 대표적인 가을 곤충이다. 매미가 빠져나온 탈피각은 겨울이 지나더라도 나무에 잘 붙어있다.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변태의 산고를 생각해 보자. 또한 가을의 산과 들에 핀 꽃에는 여러 가지 나비목 곤충이 출현한다. 줄점팔랑나비, 작은멋쟁이나비 등은 가을에 심어둔 화단에 잘 모이는 나비이다. 뿔나비, 네발나비, 멧노랑나비, 청띠신선나비 등은 빙하기 시대에도 살아남았으며 추운 겨울을 나는 성질을 획득하여 성충으로 월동하는 강인한 나비들이다. 자원이 바닥나기 전에 꽃밭에서 한바탕 축제를 벌이는 나비의 군무를 감상해 보자.

한편 가을밤은 소리내어 우는 곤충들의 이른바 밤무대 시간이다. 작은 손전등을 하나 들고 숲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다. 귀뚜라미과의 긴꼬리, 모대가리귀뚜라미, 방울벌레, 왕귀뚜라미는 사람 귀에도 듣기 좋은 분명한 소리를 낸다. 베짜라고 재촉하는 부지런한 베짱이, 검은다리실베짱이, 줄베짱이, 매부리 등도 저마다 특이한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알린다. 늦반딧불이는 이제 하나둘 빛을 던지기 시작한다. 가을이 더 깊어가기 전에 이처럼 생의 열정을 다하는 곤충들의 다양한 모습을 찾아 나서보자. 그리고 자연과의 조용한 대화에 동참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