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밤에 우는 곤충

 

귀뚜라미는 7월에 들녘에서 울고 8월에 마당에서 울고 9월에는 마루 밑에서 울고 10월에는 방에서 운다.

위의 우리 속담에서 귀뚜라미는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전령사이다.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은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깊어 가면 가을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뜨거운 여름 햇살이 잦아들고 밤에 으슥한 기운이 들 무렵이면 많은 벌레들의 소리가 어둠 속에 들려온다.

소리를 내는 곤충들

사람의 감성을 풍부하게 해 주는 음악은 여러 가지 소리들의 모임이다. 박자와 리듬, 높낮이가 서로 다른 음들이 모여 때로는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만든다. 그 중에서도 자연 속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우리의 심성을 가장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준다. 인간이 각종 도구를 사용해 음악을 만들기 전부터 자연계에는 이런 음악가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곤충의 무리인 여치와 귀뚜라미, 메뚜기들이다.

따뜻한 기운 속에 파릇파릇 식물이 돋아나면 이를 먹이로 하는 곤충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한다. 물론 성충으로 겨울을 지낸 강인한 것들도 있지만, 이들 소리내는 곤충들은 안전한 땅속이나 식물 틈에서 대부분 알로 월동하였다. 갓 태어난 애벌레들은 작고 연약하며 수가 많다. 불완전변태를 하는 이들은 번데기 시기가 없고 긴 다리와 더듬이가 어미와 꼭 닮은 축소판이다. 그러나 아직은 소리를 내는 도구인 날개가 없거나 미완성 상태로 등위에 조그맣게 싹처럼 달려 있다. 종류에 따라서 꽃이나 씨앗, 새싹을 뜯어먹거나 다른 작은 곤충을 직접 잡아먹기도 한다. 도마뱀이나 새 같은 천적들의 위험을 이겨내고 열심히 먹이를 먹어 몸을 키운 적은 수의 애벌레들만이 어른으로 되어간다.

여름

여름은 성장의 계절이다. 곤충은 겉이 단단한 외골격으로 둘러 싸여있기 때문에 특징적으로 몇 차례의 허물을 벗어야만 비로소 성충이 될 수 있다. 보통 어두운 밤중을 틈타 탈피하는 이유는 가장 허점이 많은 시기에 천적의 눈을 피해야 하면서 공기중의 습도가 많아야 몸이 서서히 마르기 때문이다. 마지막 허물벗기를 하면 소리를 내는 날개가 갖추어진다. 또 짝짓기를 위해 다른 방식으로 소리를 내는 곤충들도 어른이 되어야만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여름에 우는 곤충으로는 여치, 중베짱이, 애여치, 잔날개여치, 갈색여치, 애메뚜기, 참어리삽사리, 검정무릎삽사리 등이 대표적이다. 또 참매미, 말매미, 애매미, 쓰름매미 등도 주변에서 우는 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는 여름 매미들이다.

소리를 내는 방식

풀숲이나 나무에 붙어서 소리를 내는 곤충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자. 화려한 소리로 지저귀는 새들이나 말을 하는 사람은 목에 성대가 있어서 숨을 내쉴 때 공기를 변조하여 온갖 음을 만들어내지만 곤충이 내는 소리는 물체가 서로 비벼대는 마찰음이거나 떨어서 내는 진동음처럼 단순한 편이다. 귀뚜라미, 여치는 좌우 한 쌍의 앞날개를 마주 비벼서, 또 메뚜기 종류는 날개 겉면과 뒷다리 안쪽을 서로 비벼 소리를 내며 매미는 발달된 내부 근육을 떨어서 진동음을 만들어낸다.

가을

소리를 내는 곤충들은 드디어 제철을 만났다. 낮에 주로 우는 쌕새기들은 풀줄기에 가만히 붙어서 울고 밤에 우는 철써기는 해가 떨어지면 풀숲에서 매우 시끄럽게 연속적으로 울어댄다. 풀섶 밑에서 맑은 소리로 우는 방울벌레, 돌담 밑에서 들리는 귀에 익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 베짜기를 재촉한다는 베짱이, 풀줄기 끝에 올라와 우는 줄베짱이, 단조롭게 우는 매부리. 곤충들은 저마다 독특한 울음소리를 뽐내며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없어도 멋진 한밤의 연주회를 펼친다. 곤충의 울음소리를 사람이 가진 말로 정확히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나름대로 표현해 보자.

    줄베짱이 : 츠--츠--츠-츠-츠츠츠츠츠치읏치읏-치읏--치읏---
    실베짱이 : 츠르르르릇......츠르르르릇......츠르르르릇
    철써기 : 챠카챠카차캬차캬차캬차캬차캬차캬차캬차캬차캬차캬
    베짱이 : 쓰-잌--쩍...  쓰-잌--쩍...  쓰-잌--쩍
    긴꼬리쌕새기 : 치릿-치릿-치릿-치릿-
    매부리 : 찌이---------------
    여치 : 찍-지이이익...찍-지이이익...찍-지이이익...
    중베짱이 : 치리릭치릭릭릭릭릭리리리리리리리리리
    긴꼬리 : 리리리릿-리리리릿-리리리릿-리리리릿-리리리릿
    알락귀뚜라미 : 찌리리리릿---찌리리리릿---찌리리리릿
    극동귀뚜라미 : 귀뚤-귀뚤-귀뚤-귀뚤-귀뚤
    왕귀뚜라미 : 치이-리리리릿...치이-리리리릿...치이-리리리릿...
    알락방울벌레 : 비이잇--비이잇--비이잇--
    흰수염방울벌레 : 삐리리리리리리리리리
    풀종다리 : 후-이리릿릿릿릿릿릿릿릿
    방울벌레 : 리-잉...리-잉...리-잉
    솔귀뚜라미 : 찡찡 찌이링- 찡찡 찌이링- 찡찡 찌이링-
    어리귀뚜라미 : 찡-찡-찡-찡-찡-찡-찡-찡
    땅강아지 : 삐이익---------------------

예전부터 이런 벌레 소리를 듣고 동양 사람들은 운다고 표현했고 서양 사람들은 노래한다고 표현했으니 듣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같은 소리도 다양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계절이 점점 깊어갈 때 풀밭에 나가보면 많은 곤충들이 짝짓기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반딧불이는 빛으로, 또 나방은 냄새로 자신의 짝을 찾지만 소리내는 곤충들은 바로 자신들의 장기가 열렬히 내 사랑을 찾는 세레나데가 된다. 밤중에 벌레 소리가 나는 곳을 잘 찾아보면 총각 수컷의 연주에 이끌려 곁으로 다가온 처녀 암컷들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소리가 수명을 단축시킨다?

곤충의 울음소리는 자신의 짝이 누구이며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는 정확한 통신수단이지만 오히려 위험천만하게도 자신의 천적을 불러들이는 역효과도 가지고 있다. 다른 곤충의 몸에 알을 낳는 기생파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귀뚜라미의 노래를 정확하게 들을 수 있으며 울고 있는 틈을 타서 귀뚜라미 몸에 알을 슬어버린다. 또 청각이 잘 발달한 박쥐들은 캄캄한 밤에도 나뭇잎 위에서 우는 여치나 귀뚜라미의 정확한 위치를 듣고 이를 낚아채어 잡아먹고 만다.

어떻게 소리를 들을까?

소리를 내는 구조가 있다면 당연히 이것을 듣는 구조도 곤충의 몸에는 갖추어져 있다. 사람의 귀에 해당하는 고막 같은 것이 존재하는데 여치나 귀뚜라미 종류는 앞다리 무릎 부근에 잘 발달된 고막이 있고 메뚜기 종류는 배 첫째마디 옆구리 부근에 이런 고막이 있다. 그 안쪽은 청신경과 연결되어 소리를 듣고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알게 해 준다. 가을이 저물어 가면 곤충의 울음소리는 점점 변해간다. 날개를 열심히 비비다가 보니 그 마찰 부분이 점점 닳게 되어 이런 현상이 생기는데 한층 더 부드럽고 자연스런 음악으로 들려지게 된다. 또 수컷들끼리는 격렬한 짝짓기 싸움을 하다가 다리 한쪽을 잃는 경우도 있으며 날개도 그만큼 헤어지고 지저분해져서 소리내는 수컷의 모습은 점점 초라해지게 된다. 이제 암컷들은 저마다 수컷과의 짝짓기를 마치고 배 끝에 칼이나 바늘 모양처럼 생긴 산란관을 이용해 안전한 곳에 알을 낳는다.

겨울

기온이 떨어지면 찬피동물인 곤충은 활동하는데 지장이 생긴다. 특히 1년을 한살이로 태어나고 죽는 소리내는 곤충들은 이렇게 뜨겁게 여름, 가을을 보내고 마침내 수명이 다해 죽게 된다. 그러나 2세들을 책임질 암컷들은 그 전에 많은 알을 땅속이나 식물 조직 등에 낳아두었고 여기서 그 후손들은 편안한 잠을 자며 내년 봄을 기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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