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10. 14. 서울 용산구 한강 시민공원

곤충 관찰에 더없이 적합한 가을 날씨였다. 서울 시내의 한복판에 위치하여 지하철을 이용해서도 쉽게 갈 수 있는 이 곳은 여러 가지 메뚜기류의 천국이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코 으뜸은 바로 풀무치, 강가의 풀밭에 다가가자마자 콘크리트 경사면에 해를 쬐고 있는 녀석들을 볼 수 있었다. 단단하게 뻗은 몸매와 영특하게 번쩍이는 눈빛은 가히 메뚜기의 제왕다운 풍채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참 교미중에 있는 풀무치 쌍은 다가가서 쉽게 손으로도 잡아볼 수 있었다. 갈색형의 수컷과 녹색형의 암컷이 짝짓기를 하고 있는 것이 많이 관찰되었다. 또 간혹 제 색을 잃고 계절적인 영향으로 어중간한 빛깔을 내는 개체도 있었다.

공원에 놀러온 꼬마가 우리가 풀무치를 보고 있는 광경을 보고 쫓아왔다. 그 꼬마의 손에도 풀무치가 한 마리 들려있었다. 이름을 가르쳐 주며 꼬마의 풀무치를 보니, 뒷다리 한 쌍이 모두 떨어진 불구의 풀무치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풀무치는 우리의 손아귀를 벗어나 노란 빛을 남기며 힘차게 저 편으로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메뚜기가 비상하는 능력은 보통 뒷다리의 점프하는 힘이 발단이 되어야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지금 상황은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녀석은 순전히 날개의 힘으로도 넓은 공간을 날 수가 있는 것이었다. 과연 다른 메뚜기들도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궁금해진다.


인간과 곤충의 평화로운 공존은 가능한가?

이 곳에는 이외에도 청분홍메뚜기, 섬서구메뚜기, 벼메뚜기, 등검은메뚜기, 쌕새기, 실베짱이가 살고 있었다. 청분홍메뚜기는 날개싹이 두툼한 종령유충과 금방 우화하여 몸빛이 하얀 녀석이 발견되었다. 그렇지만 날개 경맥부에 밝은 색은 역시 뚜렷하였다. 벼메뚜기는 풀무치 다음으로 많이 관찰되었는데 날개가 조금 가늘고 날씬한 편으로 곧잘 앞으로 날아다녔다. 녹색형의 수컷과 갈색형의 암컷이 교미하는 장면이 역시 발견되었다. 쌕새기는 가는 풀줄기에 몸을 숨기고 여기저기서 분명한 소리를 내고 있었는데 가끔 들리는 또 다른 소리는 풀무치의 '드르르륵' 하는 거친 음이었다. 소리가 나는 곳에는 여러 마리의 풀무치가 모여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직접적인 구애의 행동이라기 보다는 구애 과정에서 서로를 경쟁하는 음으로 사용되는 듯 하였다. 그 흔한 팥중이가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그밖에 밤나방의 애벌레를 사냥해서 구멍 속에 집어 넣고 있는 나나니벌을 관찰했다. 사람의 접근을 눈치채고 달아났다가 멀리서 배회하였는데 조용히 지켜보고 있으니 결국 자기 사냥감을 발견해서 안전한 둥지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나니벌이 유충을 버려두고 방황하는 동안 유심히 지켜보니 어느새 파리 종류가 날아와 집적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역시 또 다른 종류의 기생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곤충의 행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인내력을 가진 많은 시간의 꾸준한 관찰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