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곤충 탐사기

1998. 7. 7 - 10

7월 7일 첫째날

우리 일행을 태운 비행기는  후쿠오카의 하카타공항에 도착했다. 한국에서의 여름보다 한결 더 후끈한 공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지하철을 타고 다시 신칸센으로 갈아타고 小郡역에 하차하여  버스를 탔다. 일본의 도로는 우리보다 더 폭이 좁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차도 작았고 아마 사람들도 예전에는 우리가 '왜' 라고  불렀던만큼 작았을 것이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보면...). 마침내 천연동굴이  발달한 아키오시다이(秋吉台) 국정공원에 도착했다. 화장실벽에 줄치고 있는 왕거미류의  유체를 처음으로 채집했다. 과학박물관 관장님을 뵙고 국민숙소에 짐을 풀었다. 바로 숙소 천장에 줄치고 있던 집유령거미를 채집했다. 숙소 주변을 걷다가 바로 앞 화단에서 부전나비의 번데기를 발견하였다. 녹색 잎사귀에 잘 위장하고 있는 녹색의 번데기였다. 도마뱀붙이(Gekko japonicus)가 벽을 기어다니고 무늬먼지벌레류도 바닥을 돌아다녔다. 우리나라에 분포하지  않는 저녁매미(Tanna  japonensis)의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들었다. 이름처럼 해가 지는 저녁이  되니 정확한 생체시계에 의해 울어대기 시작했다.저녁을 먹고 좀 쉰 후에 주변을 돌아다녔다. 짝짓기하는 검정풍뎅이류가 식물의 잎사귀마다 잔뜩 붙어 있었고 명주잠자리, 사마귀붙이, 그리고  메뚜기의 여러 가지 유충이 관찰되었다. 한여름이 되기 전이라 유충 상태의 것이 많았다. 장지뱀(Eumeces latlscutatus)이  풀위에 꼬리를 감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새똥거미와 산왕거미, 점연두어리왕거미 등의 야행성 거미들은 부지런히 줄을 치며 사냥에 나서고 있었다. 

7월 8일 둘째날

아침 일찍부터 산책을  하며 주변의 벌레들을  관찰했다. 화려한 호랑거미의 그물을 촬영하고 나무에 붙어서 먹이를 먹고 있던 커다란  농발거미를 찍었다. 매우 조그만 알망거미의 특이한 그물도 보았다. 풀아래 잠자고 있던  노랑나비와 부전나비를  관찰했다. 소형의 길앞잡이 종류(Cicindela kaleea)는 넓은 길위를  돌아다니지 않고 무슨 다른  곤충처럼 풀 위로 날아다녔다. 오전에 처음으로 박쥐동굴에 들어가 동굴생물 사육실험실을 구경하였다. 단순한 장비와 보존방식을 쓰고 있었으나 우리나라에는 그것조차 없는 실정이니 그저 부러울 따름이었다. 몸에 이슬이 맺혀있는 동굴성 밤나방과 자나방을 보았고 긴꼬리좀붙이가 인공으로 바닥에 깔아놓은  거적 밑에 서식하는 것을 보았다. 왕그리마(Therenopoda clunifera)도  입구 가까운 곳의 벽 틈에 숨어  있었는데 이 녀석은 손바닥만큼이나 크고  밤에 수풀을 돌아다니며 벌레를 먹어치우는 무서운 사냥군이면서 내 눈에도 매우 징그러워 보였다. 다음으로 특별천연기념물인 추방동(秋芳洞)  동굴을 관람하였다. 이곳은 관광동굴이라 사람들의 접촉이 잦은 동굴임에도 불구하고  동굴성 옆새우나, 노래기, 굴아기거미 등의 동굴생물의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았다. 눈에 잘 안띠는 벽면에는 동굴성 패류(Akiyoshia uenoi)가 기어다니고 있었는데 여간 관찰력이 좋지 않으면 무시하기 쉬운 그런 생물이었고  우리도 안내해 주신 분의 도움으로 알게 되었다. 오후에 세번째로 대정동(大正洞) 동굴을 살펴보았다. 이곳은 순전히 벌레가 살기  적합한 동굴로  장님좀먼지벌레류(Rakantrechus etoi)가 발견되었다. 입구 가까이에 많은 매미의 날개가  떨어져 있었는데 아마도 천장에 붙어있는 박쥐의 소행인 듯 했다. 처음보는 꼽등이류를 채집했다. 선선한 동굴에서 나오니 갑자기 더워져서 렌즈에 김이 서리는 바람에  멋진 응달거미의 집을 촬영하지 못했다. 나무 위에  기어가는 두 종의 하늘소를 보았으며 앞다리가 길게 잘 발달한 장다리바구미 한 쌍을 채집했다. 줄사슴벌레의 암컷도 발견되었다. 야간에는 숙소 불빛에 날아온  장수잠자리의 일종을 채집하였다. 숙소 부근의 가로 등을 돌며 바닥에 모인 곤충을 보았는데 많은 나방류와 왕바구미, 검정하늘소가 모여 있었고 넓적송장벌레를 비롯한  몇 가지 송장벌레가 쓰레기 더미 부근을 돌아다녔다. 음료수 자판기 불빛에 많은 털매미들이 모여들어 있었다. 

7월 9일 셋째날

오늘 아침은 어제와 다른 코스로 걸어다니며 거미와 곤충을 살펴보았다. 종꼬마거미의 그물집을 보았고 털매미의 짝짓기를 관찰했다. 반가운 나의 풀무치가 여기에도 있었다. 나뭇잎 위에  떡하니 버티고 있던 큼직한 황닷거미를 발견하였다. 녀석은 능히 개구리도  잡을만큼 대단한 위용을 갖고 있었다. 우리나라 것과 동일하게 보이는  몇 가지 나비류를 보았고 박각시의 휴식과 꽃에 모인 산꽃하늘소를 발견했다. 오전에 네 번째로 간 곳은 경청동(景淸洞) 동굴이다. 이곳은 물이 많아서 장화를  빌려 신고  들어갔다. 동굴  깊숙히 산개구리  종류(Rana temporaria ornatventris)와 배가  붉은 영원(Triturus  pyrrhogaster) 등 양서류가 많이 발견되었고 굴아기거미의 짝짓기 순간을 촬영했다. 동굴의 물가에 서식하다는 도토리거미를 발견하여 신을 벗고 물에 들어가 물위에 줄치고 있는 녀석을 힘들게 촬영하였다.

 

 

마지막으로 미공개 동굴 한 곳을 더 들렸는데 나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기다리다가 전체가 파랗고 흰 무늬가 있는 멋진 하늘소를 보았는데 너무 여유를 부리다가 놓치고 말았다. 어떤  종에 있어서 지금의 채집이란 정말 다시 올 수 없는 마지막 기회인 지도 모른다. 오후에는 좀 숨을 돌리면서 박물관 표본전시실을 관람하고  비디오도 시청하였다. 돌리네 등 석회암 지질의 야외경관을 둘러보았다.  수많은 하얀 바위가 빼곡히 치솟은  이곳의 경관은 지옥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저녁에 다시 나가서 자동차 터널 벽에 숨어있던 납거미를 발견했다. 그리고 불빛이 내려비치는 숙소 담벼락의 천장에 붙어있던 검고 푸르스름한 곤봉딱정벌레를 발견하고 삼각대의 다리를 길게 늘려 쳐서 떨어뜨려 잡았다. 딱정벌레는 묘한 수집의 매력이 있는 곤충이다. 애사슴벌레의 암컷과 송장벌레 등도 불빛에 곧잘 모였다. 털게거미의 수컷과 마침 탈피를 준비하던 황닷거미의 변신을 연속촬영하였다. 대벌레가 잎사귀를 열심히 먹고 있었다.

7월 10일 넷째날

마지막 날이라 짐과 채집품을 정리하고 버스를 기다리던  정류장에서 납거미 수컷과 백금더부살이거미를 채집했다. 꼬리가 파란 도마뱀류의 재빠른 움직임을 목격했다. 지하철역에서 길을 잃고 서로 찾아 헤매는 해프닝이 있었는데 다행히 시간 전에 만나서 일행 모두는 무사히 비 내리는 서울에 안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