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종류의 메뚜기가 살고 있는 제주도 함덕해수욕장 부근

제주도 채집기

By Rhee, H-W.

2002년 7월 8일-7월 10일

7월 8일

2002년도에 처음으로 가는 남부지방 채집..7월 8일 9시 45분 비교적 맑은 날씨에 우리는 아시아나항공 보잉737기를 타고 서울 김포를 떠나자마자 보이는 건 짙은 구름뿐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다. 제주국제공항에 내리자마자 내리는 이슬비..찌부등한 날씨 속에서도 보이는건 여러종류의 야자수와 잎이 넑적한 활엽수들, 우리는 비로서 대한민국 최남단 제주도에 도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태풍의 피해로 나무들이 부러져있고 하천이 범람한 풍경이 보이는 도로를 달리면서 우리는 아는 후배의 집에 도착했다. 후배의 집에 간단히 짐을 맡기고 우리는 제주 시외버스터미널에서 곤충을 보러 함덕해수욕장을 향해 출발하였다.

태풍의 피해로 곤충들은 어떤 피해가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사이 우리가 탄 버스는 함덕에 도착했다. 함덕에 도착하자마자 시계를 보니 12시를 조금 넘어서고 있었고 바람은 다소 약하게 불고 있었지만 이슬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일단 음식점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은 우리는 바로 해수욕장 근처 버려진 공터에서 뛰어다니고 있던 청분홍메뚜기 (Aiolopus thalassinus tamulus) 성충을 볼 수 있었다. 매우 다양한무늬 패턴을 가진 녀석들은 여러 영별로 유충들도 많이 볼 수 있었고 방아깨비 (Acrida cinerea) 유충과 땅딸보메뚜기 (Calliptamus abbreviatus) 유충과 성충도 볼 수 있었다.

해수욕장에 본격적으로 들어가니 가장 먼저 우리를 반기는 건 커다란 풀무치였다. 이 곳의 풀무치는 육지의 풀무치 아종 Locusta migratoria migratoria와 다른 아종인 Locusta migratoria manilensis나 중간 형태가 나왔다. 교미를 하는 녀석을 볼 수 있었는데 내가 접근하니까 숫놈은 날라서 도망가고 암놈 한 녀석을 채집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배가 거무스름하게 변한체 산란관을 벌리고 늘어뜨리고 있었다. 아마도 짝짓기하는 도중에 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배에 무엇인가 기생이 된 것 같았다. 바로 근처 사구 언덕 키 큰 풀숲에서는 `기익' 하면서 우는 긴날개여치 (Gampsocleis ussuriensis) 도 볼 수 있었다. 대부분 종령 유충이거나 막 우화해서 몸을 말리고 있는 개체들이었으며 아종령 정도의 유충도 눈에 띄었다. 사구에서 점박이쌕새기 (Conocephalus maculatus) 등 각 종 메뚜기를 관찰한 우리는 옆에 있는 서우봉 (111.9m) 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서우봉 숲 가장자리 덤불에 발을 들여 놓자마자 잔날개여치 (Metrioptera bonneti) 가 바닥으로 펄쩍펄쩍 뛰어서 도망갔다. 뛰어다니는 몇마리를 채집하였는데 이곳의 잔날개여치는 육지 것과 같은 크기와 아주 커다란 크기가 동시에 잡혔다. 배부분도 녹색인 것도 섞여있는 것이 조금 많은 형태적인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잔날개여치를 채집하다가 갑자기 커다란 물체가 풀쩍 뛰어올라서 보았더니 이곳에서도 반가운 여치 (Gampsocleis sedakovi obscura) 를 만날 수 있었다. 이곳의 여치는 남쪽 최남단이라서 그런지 엄청 크고 날개가 짤막한 초대형의 개체를 볼 수 있었다. 잘못 잡다가는 손가락이 잘릴 것 같은 무서움에 통으로 덥치는 사이 옆에 풀숲에서 찌르르륵~하는 커다란 소리가 들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울었는데 잘 보니 커다란 중베짱이 (Tettigonia ussuriana) 가 울고 있었다. 이곳의 중베짱이는 위의 종들과 마찬가지로 육지에 비해 매우 커다랗고 넙적한 날개를 가지고 있었다. 대부분 몸상태가 건강한 녹색이었으나 날개가 헤지거나 계절의 흐름으로 어중간한 색을 띄거나 황색을 띄는 녀석들도 볼 수 있었다. 그밖에 대량의 긴날개여치 성충과 유충들도 볼 수 있었다. 서우봉에 올라가는 길에서 땅강아지가 마구 울어댔으나 땅속으로 잽싸게 숨는 바람에 채집할 수가 없었다. 길가 풀숲에서 반디밑드리메뚜기를 찾아봤으나 작년에는 보였던 녀석들이 올해는 볼 수가 없었다.

서우봉 정상 무덤가에는 대량의 딱다기 (Gonista bicolor) 유충을 볼 수 있었고 매우 커다란 참어리삽사리 (Arcyptera coreana) 와 끝검은메뚜기 (Stethophyma magister) 도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도 역시 '씨이익' 하고 우는 삽사리 (Mongolotettix japonicus) 를 볼 수 있었다. 대부분 단시형이었지만 곳곳에서 장시형도 만날 수 있었다. 중베짱이를 보러 다시 아래로 내려오던 나는 '찍찍' 하는 소리를 내는 극동실베짱이 (Kuwayamaea sapporensis) 를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뒷날개가 앞날개보다 길었지만 암놈은 뒷날개와 앞날개의 길이가 같은 암수 성적이형 현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석양이 내릴 무협 우리는 마을에 내려와서 저녁을 먹고 다시 해수욕장에 갔다가 풀에 엄청난 숫자로 붙어있는 날파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 아마 이들이 좋아하는 식초인 이름모를 이 풀에 붙어 있나본데 엄청난 숫자가 과연 압도적이었다. 해가 지자마자 게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띄였다. 아까 낮에도 보였지만 밤이 되니 더 많은 수가 나온 것 같았다. 서우봉 숲 가장자리는 역시 우리가 예상했던 데로 중베짱이가 가장 많은 모습을 드러내고 울고 있었다. 찌르륵~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녀석들의 행동을 관찰 하다보니 아직은 짝짓기보다는 수컷끼리 붙어서 자리다툼을 하거나 영역경쟁을 하는 녀석들이 교미하는 녀석들보다 많이 눈에 띄였다. 혹시 다른 메뚜기는 보이지 않나 하고 보고 있는데 낮에 많이 모습을 보였던 긴날개여치들도 가끔씩 울거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긴꼬리 (Oecanthus sp.) 도 눈에 띄였다. 나는 보지를 못했지만 주인장님은 뛰어다니는 각시메뚜기 (Nomadacris japonica) 를 잡았다고 하셨다. 해안가 바위에서 우리는 바다귀뚜라미류를 찾았지만 녀석들은 눈에 띄지를 않았다. 밤에 풀숲을 메우는 여러 풀벌레 소리를 뒤로 하면서 우리는 함덕해수욕장을 떠나 제주시 숙소로 돌아왔다.

7월 9일

아침 8시경에 일어난 우리는 아침을 먹고 한라산 모퉁이 산굼부리로 떠났다. 제주시는 날씨가 맑고 화창했지만 한라산은 계속 짙은 안개가 끼였다. 산굼부리에 도착한 우리는 안내문 지도에 따라 산굼부리 주변에서 채집을 하기로 하였다. 잔디밭에서는 다수의 청분홍메뚜기 유충과 왕귀뚜라미류(Teleogryllus sp.) 유충을 볼 수 있었다. 산굼부리 모퉁이 대나무 풀숲에선 울고 있는 삽사리와 풀무치, 중베짱이 유충을 관찰할 수 있었다. 산굼부리 주변에는 억새 산책로가 있어서 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긴날개여치유충과 잔날개여치,밑들이메뚜기(Anapodisma miramae) 가 눈에 띄었다. 중형 크기의 메뚜기가 억새 숲을 돌아다녀서 앉기를 기다려서 관찰하니 벼메뚜기붙이(Mecostethus alliaceus) 였다. 육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습한 벼과 식물이 있는 곳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산굼부리에서 채집을 끝내고 입구에서 버스를 기다리는사이 풀숲에서 막 부화한지 얼마 안된 벼메뚜기류 (Oxya sp.) 유충을 대량으로 관찰할 수 있었다. 버스가 잘 오지를 않아 다른 정류장으로 이동하던 우리는 작은 풀숲에서 실베짱이 (Phaneroptera falcata) 와 참어리삽사리, 긴날개여치 유충을 볼 수 있었다. 아스팥트길 주변의 풀숲에서는 잔날개여치와 삽사리가 많이 눈에 띄였고 주인장님이 갑자기 아스팥트 끝부분의 흙을 가리켜서 봤더니 커다란 풀무치가 물기에 젖은 몸을 말리고 있었다. 길가 주변에서 다른 메뚜기를 찾으며 정류장에 도착한 우리는 끝검은메뚜기를 채집하고서 버스를 타고 서귀포를 향해 출발했다.

서귀포에 내린 우리는 정방폭포 쪽으로 야간채집 탐색을 겸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나무나 덤불이 꼭 동남아쪽과 같은 이국적인 풍경이었는데 일본도 이런 풍경이었다고 주인장님께서 말씀하셔서 나는 색다른 메뚜기가 혹시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매우 설레였다. 정방폭포 주변 파라다이스호텔 옆 경기장에서 우리는 청분홍메뚜기와 섬서구메뚜기 (Atractomorpha lata) 성충을 볼 수 있었다. 계속해서 풀숲을 뒤지다 나는 머리가 굉장히 뾰족한 메뚜기를 만날 수 있었다. 다름아닌 목매부리 (Euconocephalus nasutus)....성충으로 월동하는 몇 안되는 한국의 메뚜기 중 하나인 녀석은 남쪽 지방에만 볼 수 있는 녀석이라서 그런지 더욱 더 무척이나 반가웠다.

길옆 나무 틈에 숨어있는 애사슴벌레 사진을 찍고 우리는 바닷가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닷가에서 가장 눈에 들어오는건 각시메뚜기 유충들이었다. 여러군데 풀밭에 바글바글한게 겨울에 월동을 할 때 관찰하러 오면 매우 많은 수가 보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갑자기 파다닥나는 메뚜기가 있어서 따라가 보았더니 각시메뚜기가 앉아 있었다. 중부지방에는 거의 볼 수 없던 녀석이라서 얼른 녀석을 통 속에 넣었다. 산란을 하다가 다쳤는지 배마디 부분이 상당히 손상되어 있었다. 주인장님께서는 풀숲에 앉아 있는 목매부리를 잡으시고 매우 기뻐하셨다. 바닷가 바로 옆사구 언덕에는 청분홍메뚜기와 긴날개여치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짝짓기를 마쳤는지 배가 땡땡해져서 돌아다니는 긴날개여치 암컷도 눈에 띄였다. 바로 옆 덤불 숲에서는 바람이 불 때마다 중베짱이가 소리를 내었다.

계속 사구를 따라서 가다가 풀숲에 숨어있는 청거북을 보고 우리는 매우 반가웠다. 어떻게 그 곳까지 왔는지 다시금 자연의 신비로움에 감탄했다. 석양 무렵부터 야간채집을 위해 주인장님과 흩어져 시작한 나는 버려진 풀숲에 들었갔다가 대량의 긴꼬리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다수의 긴날개여치도 어그적 어그적 돌아다니고 있었다. 계속 길을 옮기다가 버려진 공터에서 중베짱이의 음향을 추적하다가 칡덩쿨을 살피던 나는 커다란 각시메뚜기가 앉아 있는 것을 채집하였다. 칡 덩쿨뿐만 아니라 야간인데도 곳곳의 풀밭에 붙어 있거나 뛰어다니는 녀석들이 많이 눈에 띄였다. 중부 지방에서는 희소하지만 여기 제주도에는 엄청나게 눈에 띄였다. 나무 위에서 우는 목메부리 울음소리를 들었으나 너무 높아서 보지를 못했고 풀숲마다 우는 극동실베짱이를 볼 수 있었다. 이곳에는 함덕의 중베짱이처럼 엄청난 수의 극동실베짱이가 울고 있었다. 계속 길 주변에서 채집을 하다가 다른 곳에서 채집을 계속하시던 주인장님과 만난 나는 힘든 몸을 이끌고 서귀포시 숙소로 돌아왔다.

7월 10일

서귀포시에서 아침을 먹고 간단한 채집을 하던 우리는 천왕사부터 제주시까지 99번 도로를 걸어가면서 채집을 하기로 결정하고 천왕사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중문행 버스에 올라탔다. 해발 600m 정도인 천왕사에 내린 우리는 풀숲에 숨어있는 반디밑드리메뚜기 (Parapodisma setouchiensis) 를 드디어 볼 수 있었다. 성충은 많이 보이지를 않았지만 유충은 많이 보이는 것이 조금 이르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밑드리도 곳곳에서 관찰할 수 있었고 삽사리, 잔날개여치, 긴날개여치 유충이 많이 눈에 띄였다. 길옆에서 계속 채집을 하던 우리는 버려진 목장 주변에서 노루를 만날 수 있었다. 뿔이 덜 자란 수컷이었는데 사람들이 먹을 것을 많이 주어 버릇해서 그런지 도망갈 생각은 아니하고 계속 먹을걸 줘도 가만히 있었다.

계속 따라오던 노루에게 과자를 주다가 조그만 소형의 메뚜기가 날라서 채집하였다. 대륙메뚜기류 (Omocestus sp.) 인줄 알았는데 주인장님께서 극동애메뚜기 (Chorthippus biguttulus maritimus)의 무늬 변이라고 하셨다. 이들 속은 서로 비슷하지만 고막 모양과 날개 무늬 패턴으로 속이 분리된다고 설명해 주셨다. 또 극동애메뚜기는 색채나 무늬가 매우 다양해서 많은 변이가 있다고 하셨다. 이들 메뚜기의 무늬와 색채는 무엇 때문에 변하는지 알아보는 것도 메뚜기 색채와 관련해서 매우 흥미로운 주제가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목장에는 청분홍메뚜기 등 매우 다양한 메뚜기들이 보였고 역시 이곳 청분홍메뚜기 유충들도 다양한 무늬와 색상을 가지고 있었다. 쌕새기 (Conocephalus chinensis) 들도 많이 눈에 띄었는데 저마다 풀숲에 바싹 붙어서 의태를 하는 것이 매우 재밌었다.

내려오는 길에는 많은 종류의 메뚜기를 볼 수 있었고 그중에서 끝검은메뚜기는 엄청나게 볼 수 있었다. 도깨비고개에서 억새숲 습지에서도 녀석들은 발견되었고 참어리삽사리.중베짱이도 보였으며 긴날개여치의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조금 가니 빈 공터와 무덤이 같이 있는곳에서 각시메뚜기와 풀무치가 날라다니고 있었는데, 각시메뚜기는 풀무치와는 달리 풀과 풀 사이를 날라다니고 있었다. 이들 습성과 생김새는 많은 관련이 있다고 주인장님께서 설명해 주셨다. 한편 주인장님께선 옆에 풀숲에서 풀매미를 잡고 매우 기뻐하셨다. 길가에서 계속 채집을 하던 우리는 길옆 보호대에 붙어서 의태하고 있는 목매부리를 채집하였다. 제주시 근처까지 걸어가던 우리는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후배 집의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 근처에 가던 중에도 들리는 긴날개여치 울음 소리를 들으면서 서울에서도 길가에서 이런 소리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저녁을 먹고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조금 오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약간은 아쉬움도 들지만 즐거운 채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