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


죽은 비둘기 시체로부터 살점을 떼어가는 땅벌

1999. 5. 22

팔뚝이 따갑다. 모처럼 쏟아지는 햇살에 몸을 씻었다. 그물을 들고 가는 일단의 아이들을 만났다. 고기를 잡겠다고 신나있는 아이들, 움직이는 대상을 사냥한다는 것은 아주 오래된 원초적인 인간의 흥미거리이다. 여기저기 붙어있는 접근금지 팻말과 철조망, 군부대가 있기에 우리의 자연은 그나마 보존되고 있다.

산길을 따라 삽사리와 애메뚜기의 유충들이 푸다닥 뛴다. 오늘 목격한 놀라운 광경은 딱정벌레, 두 마리가 겹쳐있길래 평범한 짝짓기 광경인줄만 알았다. 그러나 마크로 렌즈를 들이밀고 가까이 들여다보자, 의병벌레가 하늘소붙이를 감싸안고 딱딱한 등딱지부터 뜯어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병벌레는 병대벌레와 흡사한 성격의 그룹인데 체구는 조그맣지만, 병대벌레와 마찬가지로 으시시한 육식성 곤충이었다.

어느 한 그루의 나뭇잎 뒷면에는 온통 병대벌레 천지였다..녀석들은 새싹에 낀 진딧물로 실컷 포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풀밭에는 롱다리의 여치 유충들이 부화하여 나를 즐겁게 하였다. 이제 머지 않아 여름을 달굴 메뚜기들의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릴 것이다. 순간! 하늘을 덮는 저윽한 날개짓 소리,,,어디 가까이에 벌집이 있나 하고 잠시 의아해 했지만, 그것은 착각이었다. 잠시 후 벌떼가 바로 머리 위의 하늘에서 공중을 마구 가로지르며 날아가고 있었다. 공포감이 엄습하여 몸을 낮추고 기다렸더니, 곧 녀석들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분봉하는 행렬이었던 것이다.

등빨간거위벌레에게 한 방 물렸다. 벌레가 사람을 순간적으로 무는 행동은 일반적인 동물의 반응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즉 무조건반사적으로 자신을 빨리 회피하도록 하여 그 찰나를 달아나려는 기회로 삼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 일반적인 동물이 아니고 곤충심리학을 연구중에 있기 때문에(?) 내 손을 물고 있는 녀석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하핫...녀석이 물고 있다가 민망한지 슬그머니 큰턱을 풀어 버렸다. 그래도 사진 모델은 죽어도 하기 싫다고 휭~하니 날아가 버린다.

산길에 죽어있는 꽃뱀의 모습. 뱀에 대한 인간의 공포는 에덴동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공포란 무지로부터 출발한다. 뱀 시체를 두고 쉬파리들이 경쟁을 한다. 여기저기다 머리를 디밀고, 어디서 기어온 노린재도 죽은 시체의 즙을 빨고 있었다. 시체의 아랫면에는 송장벌레 대신 조그만 풍뎅이붙이류가 모여 있었다. 한 생명이 죽음으로써 또 다른 생명이 산다는 것은 굳이 부처의 설법이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자연의 섭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