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곤충 탐사기


구름에 싸인 마차푸차레

1997. 7. 17 - 28

1997년 7월 17일, 우리는 홍콩을 경유하여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객실에 오르자마자 열대 아시아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코를 찔렀는데 비행기 안은 마치 우리의 시골 기차 칸과 비슷한 분위기여서 여기저기 짐을 잔뜩 든 사람들이 자리를 찾아 헤매는 동안 머리 속엔 이 비행기가 과연 뜰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윽고 비행기의 창밖은 아래로 수많은  하얀 구름이 깔리고 성층권보다 더 높이 올라온 듯한 차가운 느낌의 저녁놀을  바라보다가 늦은 밤, 불빛이 반짝거리는 공항에 착륙하였다. 유창한 한국말로 안내를 받으며 MBC 드라마 '산' 의 촬영팀이 묶었다던 한국관으로 향했다.

 

7월 18일 카트만두의 아침, 고다바리 식물원, 포카라

아침 일찍 맑은 공기를 마시며 일어나 숙소의 옥상에서 카트만두시의 전경을 한 컷 촬영했다. 아기자기하면서 드넓은 하늘이 가득한 아름다운 도시였다. 오전에 왕가의 별장이었던 고다바리식물원에 도착해 곤충을 관찰했다. 커다란 나비가 곳곳에서 날고  굵은 나무줄기마다 곤충들의 허물과 작은 사건들이 발견되었다. 희고 붉은 화려한 색상의 대형 상투벌레는 머리에 툭 튀어나온 부분이 마치 우리 조상들의 상투모양처럼  특이한데 가까운 친척인 매미충과 마찬가지로 놀라게 하니 훌쩍 뛰어  날아올라 저만치 도망을 가버렸다. 그리고 낮고 약한 소리로 우는 소형의 매미 종류, 녹색날개와 빨간 눈의 매미, 가시가  돋은 대벌레가 보였다. 왕잠자리나 줄베짱이처럼 우리나라에서 보던 것과도 동일한 곤충도 있었다.

 

오후에는 본격적인 히말라야 탐사를 위해 차를 타고 '포카라' 로 이동했다. 중간 중간에 쉬는 틈을 타서 곤충상을 보았는데 낯익은 우리의 곤충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한국에서 크기가 컸던 녀석이 여기서는 작아 보이고 작았던 녀석은 커 보이는 등 약간씩  다른 느낌이 들었다. 빛깔도 왠지 차이가 있었다. 아무래도 곤충의 먹이가 되는  이 곳의 식생이 우리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국적인 나비와 잠자리들, 금속광의 딱정벌레를 보았다. 늦은 오후 도착한 포카라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정확히 4시 무렵이 되면 비가 쏟아지는 이곳 날씨는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더운 낮동안 증발한 수증기가 두꺼운 구름을 만들고 오후가 되면 빗방울이 되어 다시 그대로 낙하하는 것이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내리는 비를 보며 쉬고 있는데 바지에 뭔가가 붙어 있었다. 장수풍뎅이의 암컷이 식당 불빛에 날아왔다가 나를 알아보고 내려앉은 것이다. 기특한 녀석!

7월 19일-23일 히말라야 탐사

이른 아침, 포카라의 유명한 호수를 구경했다. 과조차 알 수 없는 전혀 낯선 곤충들이 나를 즐겁게 하였다. 그런데 카메라 자세를 잡기 위해 풀 속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던 나는 일순간 고통에 찬 비명을 속으로 지르고 말았다. 어떤 종류의 풀에 팔뚝을 긁혔는데 마치 수 백만 볼트의 전기가 통하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이 밀려와 한참을 꼼짝하지 못했다. 그것은 쐐기풀의 일종으로 잎에 많은 독가시가 무시무시하게 돋아 있는 것을 미쳐 보지 못한 것이다. 나중에야 안내인이 "Very dangerous!" 라고 말해주었는데 이미 때는 늦은 후였다. 그 후로 이 풀만 보면 슬슬 그 주변을 피해 다니게 되었다. 호수 주변에는 많은 잠자리 종류가 있었고 날개가 다 찢어지도록 짝짓기 경쟁과 영역 다툼을 하는 큰 잠자리들을 목격하였다.

 

드디어 도착한 히말라야의 아래에서 가장 먼저 나를 맞아주는 녀석은 메뚜기들이었다. 고산지방의 메뚜기는 날개를 소실하는 경향이 많고 지역집단으로 갈라져 많은 유전적 변이를 가지는데 역시 유충처럼 보이는 것들이 전부 날개가 퇴화한 메뚜기 종류들이었다. 놀라운 보호색으로 나무껍질 표면에 완전히 위장하고 있는 여치 종류도 있었다. 색깔이 화려한 종류는 자신의 모습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며 활동하는데 몸에는 분명히 독이 있을 것이다.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독성분을 품은 식물과 이를 먹기 위해 또 진화하는 곤충들, 유독식물과 유독곤충이 쉽게 발견되었다. 그 외에 바구미류, 가뢰, 꽃무지 등의 딱정벌레가 눈에 띄었으며 확실히  우리 것보다 울긋불긋 치장이 요란하다.

 

저 멀리 눈덮힌 산 정상이 시원하게만 보이는데 그 아래는  무척이나 더운 아열대의 날씨가  우리를 쉽게 지치게 하였다.  산길의 곳곳에 간이 숙박시설인 lodge가 있어서 틈틈이 쉴 수 있었다. 그들이 즐겨 마시는 밀크티와 더운 차를 마시며 갈증을 달랬다. 눈에 띠는 것은 코카콜라 상표들, "이 높은 곳까지도?" 하는 생각이 들었다.

 

7월 20일, 역시나 밤새 내리던 비는 뚝 그치고 맑은 아침 날씨가 우리를 기다려 주었다. 네팔은 아주 전형적인 산악국가로 산과 더불어 계곡이 잘 발달하였다. 더구나 우기라서 매일밤 비가 내리는데 곳곳에서 물이 흐르니 자연히 수서곤충상이 발달하였다. 낮에 해가 쨍쨍할 때에는 무척이나 다양한 종류의 잠자리들이 날아다니거나 주위에 내려앉았다. 우리 나라에도 분포하는 된장잠자리와 밀잠자리류가 많았고 날개에 점박이 무늬가 특이한 꼬마잠자리, 배가 아주 빨갛거나 파란 여러 가지 좀잠자리류가 많았다.

 

그런데 밀림이 우거진 지역에서 만난 곤충이  아닌 불청객, 거머리는 정말 흡혈귀로  타고난 생물이었다. 우리나라의  거머리를 떠올리면 논에서 일하다가 물 속에서 다리에 들러붙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이 곳의 거머리는 육지산이다. 산길가 주변에 늘어진 풀 아래를 보면 거기에 마치 낙하산병처럼 대기하고 있는  거머리 부대를 볼 수  있다. 지나가던 사람이던, 동물이던 간에 뭔가가  이 풀을 툭 건드리게  되면 거머리들은 잽싸게 그 대상에게로 이동하기 위해 숨은 난리를 피운다. 나는 운동화에 뭔가가 들어간 느낌이 들어서 신발을 벗어 보니 으잉? 핏자국이? 어느새 운동화로 기어들어간 거머리가 양말 위로 그 지독한 주둥이를 붙이고  피를 빨고 있었던 것이다. 거머리가 상처를 낸 곳은 피가 잘 멈추지도 않는다. 마치 질기디 질긴 생고무같아서 발로 밟아도  죽지 않는 이 흡혈귀의 공격을 그 후로도 대 여섯 번 이상 당했는데 언제나 내 몸에 주의를 기울여야 녀석들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롯지에서  만난 어떤 염소의 목에서도 굵은 핏방울 자국이 있었고 통통해진 거머리는 동그란 원형이  되어 몰래 떨어져 나간다. 이곳의 야생동물은 이 흡혈귀에게 많은 희생이 있을 듯 했다.

 

첩첩산으로 이어진 히말라야에서 만난 이 곳 사람들은  원시적인 수단으로 생필품을 비롯한 여러 물건들을  아래에서부터 위로 지어 날랐다. 나귀 떼가 잔뜩 짐을  싣고 힘든 산행을 하거나  사람이 직접 무거운 물건을 지고 날랐다. 그러나  이들의 표정은 그렇게 삶에  쪼들린 인상을 주지 않았고 오히려 우리가 곤충을  사진에 담는 작업을 할 때에  가까이 다가와서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그들의 관심을  나타냈다. 물질문명이 인간의 삶의 질을 높였는지는 몰라도 마음속의 평온과 행복까지 가져다  줄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이 곳에서 힘들고 낮은 생활 수준을 보았지만 오히려 평화로운 그들의 눈매에 깊은 인상을 받게 되었다.

 

히말라야의 전경이 모두 보이는 롯지의 마당에서 단체 촬영을 하고 하산을 시작했다. 푸른  금속광의 부전나비와 쐐기풀나비, 나무껍질로 위장한 나무사마귀, 꽃사마귀 등등의 곤충을 뒤로 하고 다음 일정으로 향했다.

7월 24일-27일 치트완 국립공원 탐사

7월 24일 치트완 야생국립공원으로 이동했다. 우리를 환영하는 호텔의 부지배인은 나보다 2살이 많은 검은 머리의 젊고 매력적인 남자였다. 호텔에서는 밤에 관광객을 위한 쑈가 벌어졌는데 네팔 고유의 춤과 노래를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위의 남자 지배인이  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바로 여기서 열정적으로 춤추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우리의 곤충탐사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우리가 떠나는 날까지 친절하게 안내해 주었다. 이곳 프로그램에 따라 사파리 차를 타고 코뿔소 구경도 하고 코끼리 등에 올라타고 주변도 둘러보았다. 코끼리 모는 사람은 가다가도 연신 풀을 뜯고 딴청을 피우는 코끼리를 다루기 위해 강철로 만든 갈고리로 연신 코끼리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래도 녀석에게는 가려운 정도밖에 느껴지지 않는지 무척이나 말을 안 들었다. 코끼리가 지나간 초원에는 금방 신선하고 거대한 똥덩어리가 만들어지는데 그 엄청난 양은 놀라웠다. 그리고 보니 이 곳에는 소똥구리가 무척이나 많을 듯 했는데 내려서 샅샅이 조사해 보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다. 여기저기 뚫려 있는 구멍들은 필시 녀석들의 본거지인 것만 같았다.

 

이 곳에서는 야간 촬영을 주로 하였다. 어리여치가 낮잠을 끝내고 나뭇잎 위에 모습을 드러냈고  대벌레류가 쉽게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주로 안전한 밤중에 돌아다니며 잎을 갉아먹었다.  불빛에 조그맣고 까만 사마귀가 날아왔는데 매우  특이한 행동이 관찰되었다.  낫같은 앞다리를 서로 모아서 좌로 한번 우로 한번 접었다가 폈다가 하는데 사마귀의 이런 행동은 나에게 무척이나 흥미로왔다. 공원의 호텔 주변 가로등에는 많은 곤충이 모여들었고 커다란 철써기(Mecopoda elongata) 암컷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밖에 바퀴 종류가  꽤 여럿 있었는데 교미하느라  정신없는 한 쌍을 촬영하였다. 갈색 줄무늬가 있는 사슴벌레 암컷도 발견했다.  그러나 밤에는 정말 모기가 무척이나 많아서 매우 짜증스러웠다.  국립공원을 떠나던 날, 강가에서 나비가 무리지어 물을 빠는 장면을 목격했다. 나비의 군무는 마치 딴 세상에 온 것처럼 환상적이다.

 

7월 28일 서울로

전체적으로 네팔의 곤충상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다양했고 비슷한 유사종들도 많이 볼 수 있어서 한반도와의 지리적인 연관성도 생각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