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연두게거미의 짝짓기

1993. 5. 27.

동네 근방의 낮은 산에서 채집한 줄연두게거미(Oxytate striatipes)의 한 쌍이 교미하는 것을 관찰하였다. 이 게거미는 일반적인 게거미류의 생김새와 달리 복부가 가늘고 길며 몸 전체가 녹색의 보호색을 가지고 있어서 나뭇잎에 붙어 먹이사냥을 하기에 알맞고 잔털이 다리마다 드문드문 나 있다. 암컷은 온통 녹색인 반면, 성숙한 수컷은 앞쪽 제 1, 2 다리의 넓적다리마디가 붉고 복부의 가장자리도 붉은 빛을 띠며 더듬이다리 한 쌍 역시 붉은 색이다. 처음에 가둬두었을 때는 서로 도망다니기에 바빠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화분의 앵두나무잎 위에 풀어주었을 때 그 일이 일어났다. 먼저 수컷이 나뭇잎 위에 착 내려앉아 자세를 잡고 있었다. 멋모르는 암컷이 근처에서 기어다니다가 발각이 되었다. 순식간에 먹이를 덮치듯 암컷에게로 달려든 수컷은 암컷의 몸을 완전히 사로잡고는 그 달려든 충격으로 둘은 같이 나뭇잎에서 떨어져 거미줄에 의지하여 매달린 채 공중에서 한 몸처럼 붙어 있었다. 그러다가 체중에 못이긴 거미줄이 늘어나면서 이 한 쌍의 줄연두게거미는 땅바닥에 추락하고 말았다. 암컷은 사로잡힌 먹이처럼 죽은 듯이 사지를 쭉 펴고 꼼짝도 하지 않은 체 수컷이 하는 대로 몸을 맡기고 있었으며 수컷은 이렇게 완력으로 암컷을 제압한 후에 누워있는 암컷의 몸을 더듬어 생식공을 찾았다. 암컷의 복부 안쪽에 위치한 생식공을 발견한 수컷의 한 쪽 더듬이다리가 갑자기 부풀더니 정액 한 방울이 나오고 자연스럽게 이것은 암컷의 생식공으로 흡수되었다. 불과 이 일은 몇 초 사이에 벌어졌으며 교미가 끝나기 무섭게 수컷은 부리나케 줄달음질을 쳤다. 한 동안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있던 암컷은 자기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가를 아는지 모르는지 뒤늦게 정신을 수습하고 나뭇잎으로 돌아갔으며 수컷은 그 후로 며칠 뒤에 자연사한 시체로 발견되어 표본으로 남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