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글을 제가 중학생 때에 겪은 일로 고민하던 것을 일기처럼 적어둔 것입니다.

1. 새끼 쥐와 나의 갈등

그 때가 아마 여름이었을 것이다. 저녁 무렵 나는 문득 문을 열다가 날쌔게 움직이는 검은 물체를 언 듯 보았다. 첫 눈에 나는 그것이 쥐임을 알 았다. 이 동네에서는 길을 지나가다가도 스파이 작전을 펼치는 듯 쥐가 잽싸게 장소이동 하는 것을 자주 본다. 이 곳에 살게 된 후 쥐란 놈을 우리 집에서는 처음 본 것이다. 부엌에 음식찌꺼기를 모아두는 곳이 있는데 아마 그곳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다. 그전부터 그 곳에는 자주 검은 콩알 같은 것이 떨어져 있었다. 쥐란 놈이 배부르게 먹고는 볼 일을 잘 본 것이다.

'이 놈 쥐새 끼, 오늘 너, 나한테 잘 걸렸다' 이렇게 생각하고는 쥐가 들어간 장소를 조심조심 살펴보았다. 번쩍하고 작은 눈빛이 작은 항아리 구석에서 신호를 했다. 그래서 나는 조용조용, 살금살금 접근전을 폈다. 그 순간 검은 물체가 내 눈 앞을 뛰쳐나갔다. 얼떨결에 나의 손은 그 물체를 움켜쥐고 말았다. 더럽다는 생각이 미쳐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다시 생각해 보고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막상 내 손아귀에 낚아채인 쥐는 아직 미성년자였다. 경험이 부족한 탓인지, 섣불리 사람 눈앞에 나타나 불상사를 입게 된 것이다. 이 한 마리의 새끼 쥐는 움켜쥔 내 손아귀에서 꽁당꽁당 심장을 떨고 있었다. 그 신호가 나의 손을 자극하여 나의 대뇌는 그 쥐새끼를 무척 가엾게 느끼게 하였다. '아직 새끼 쥔데...' 하며 문득 다시 놓아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그 불쌍한 새끼 쥐를 찬찬히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겁에 질린 동그란 눈동자, 더욱 나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었다.

그 순간 그 까만 눈동자 주위를 구물구물 기어가는 여러 마리의 쥐이와 진드기들! 갑자기 몸서리가 쳐졌다. 그 벌 레들은 쥐가 어떤 존재인가 나에게 확신을 주고 말았다. 그래서 작은 유리병 에 내 손아귀를 풀고는 마개를 단단히 봉했다. 그리고 비닐로 싸고 또 쌌다. 한편으로 동물애호가인 내가 하는 짓이 잘못된 것인가 생각해 보았지만 역 시 쥐와 인간은 서로 다퉈야만 될 상대이다. 그 유리병, 그러니까 쥐가 담긴 유리병, 또 그 유리병을 담은 비닐봉지를 잽싸게 쓰레기통에 버렸다. 어쩌다 재수가 좋으면 탈출해서 새 삶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뒤 비누로 쥐를 잡은 내 오른손을 여러 번 씻으면서 동물보호와 학대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아, 잠깐! 이 글을 쓰고 있자니, 작년에 죽은 쥐가 생각나는구나. 그러면 앞에 나온 글 중 시정해야할 부분이 생겼군. 우리 집안에서 처음 본 쥐는 바로 이 쥐다. 양해해 주세요. 이 쥐는 유리병에 담아버린 그 쥐보다도 더 작은 쥐였다. 그 때문에 동작이 훨씬 빠르고 숨는데 도사였다. 그 때가 여름 이어서 연탄 아궁이에는 불이 없었다. 한찬 나와 쫓고 쫓기는 승부를 하던 이 새끼 쥐는 재봉틀 뒤, 항아리 뒤, 쌀통 뒤, 석유 곤로밑 등 가릴 것없이 아주 좁은 틈이라도 들어가 애를 먹었는데 마침내 연탄 아궁이 불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정말 놀라운 스피드였다. 불구멍으로 보고 불뚜껑 을 열고도 보고 했지만 들어가 어디 숨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비닐로 그 구멍을 막고 한참을 기다려 보았다. 아궁이에 달리 나올 구멍이 없었는지 조금 있으려니 비늘을 건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눈치 못채게 비닐 끝을 잡고는 확 당겨버렸다. 그 순간 다시 도망쳐 들어가는 쥐의 일부분 모습이 보였다. 이렇게 한참을 씨름하다가 지쳐서 그냥 비닐로 막아둔 채 며 칠이 지났다.

학교에 갔다오니 어머니께서 아궁이에서 죽은 쥐가 발견됐다는 말씀을 하셨다. 너무 어린 쥐라서 비닐을 밀고 나올 힘은 없었고 더욱이 빠 져나갈 구멍은 그것 하나뿐이라서 갇혀서 굶어 죽었는지, 또는 질식사한 것 같았다. 비닐마개를 조사해 보니 빠져나가려고 애쓴 흔적이 엿보였다. 이곳 저곳이 갉아서 찢어졌고 떨어져 있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쥐 시체는 내다 버려졌기 때문에 더 자세히 조사할 수는 없었다. 혹시 비닐을 뜯다가 삼켜서 목구멍이 막혀 죽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무튼 이렇게 새끼 쥐는 나와의 싸움에서 큰 갈등을 일으켰다. 비록 인간에게 해가 되지만 그 어린 쥐의 모 습은 아주 귀여워 보였기 때문이다. 차마 내가 직접 죽일 수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2. 영리하고 어리석고 서생원

얼마전의 일이다. 이른 아침에 우리 어머니께서 화장실에 들어가려 는 순간 문을 여시다가 소리를-비명을- 지르셨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한참 새벽에 변소에서 놀던 서생원이란 자가 갑자기 문을 여는 바람에 놀라서 변기 속에 푹 빠져버린 것이었다. 어머니 말씀을 받자와 이 몸이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비맞은 생쥐 꼴을 하고는 떨고 있었다. 변기의 물을 홀딱 뒤집어쓰고는 추워서 그런지, 내가 무서워서 그런지 몸을 바들 바들 떠는 것이 나한테까지 느껴졌다.

그런데 갑자기 장난기가 생긴 나는 괴성을 질러 쥐의 반응을 보았다. 그 쥐는 이전의 쥐와는 달리 큰 쥐, 그러니 까 성숙한 쥐라서 나의 위협을 받고는 '찍찍'하는 쥐들 특유의 소리로 역시 나를 위협해 왔다. 홧김에 침을 녀석에게 탁 뱉었더니 운동신경 또한 놀라와 재빨리 피하는 것이었다. 오줌도 마렵고 빨리 이 쥐를 치워야 하겠기에 못쓰 는 고무장갑을 꼈다. 위생을 위해서다. 이제는 쥐가 가련하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비닐을 준비하고 가까이 갔다. 쥐는 변기를 오르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그 미끄러운 변기 통에서 헛발질을 할 뿐이었다. 드디어 나의 위력적인 손아귀가 그 쥐의 몸통을 움켜잡아 비닐 속에 던져 넣었다. 물 속에서 변 기 통을 기어오르느라 힘을 다 썼는지 그리 요동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러 겹의 비닐봉지를 싸서는 역시 쓰레기통에 갖다 버렸다. 나는 여태껏 쥐의 약삭빠르고 영악한 모습을 보고 그런 줄만 알았는데 오늘의 일을 겪고나니 쥐도 실수를 하고 어리석다는 것을 느꼈다. 쥐뿐 아니라 모든 동물, 인간도 역시 완전할 수는 없는 법이리라.

3. 쥐와의 투쟁

어제, 그러니깐 12월 21일, 나는 3번째 쥐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 이제까지 내 손에서 순순히 잡히던 쥐의 무력함을 보고는 다 그런 줄 알았 건만 어제는 정말 암표범같이 표독스런 쥐를 만나 새삼 놀라운 걸 알게 되 었다. 교회에 갔다가 뒤가 급하길래 화장실에 들어가 시원함을 느끼고 나왔는데 부엌 바닥에 수채구멍 마개가 열려 있었다. '아까는 분명히 닫혀 있었는데' 하고 의아한 마음을 품고는 손을 비누로 씻고 있었다.

그때 설거지 그릇 뒤에서 엄청나게 큰 쥐 한 마리가 놀라운 속도로 부엌 바닥을 가로질러서 재봉틀 뒤에 숨는 것이 아닌가! 요새 쥐를 자주 보았기 때문에 그리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 크기가 지금껏 우리 집에 나타난 쥐 중에서 최대였다. 나는 손 을 수건에 닦기 위해 방안으로 들어오면서 '오늘 또 쥐 한 마리 제사 치러야 겠군' 하면서 지금껏 쥐잡이 사냥을 해온 경험으로 자신만만해 하였다. 다시 준비를 하고 나오려는데 그 쥐가 재봉틀 뒤에서 잽싸게 나오더니 수채구멍을 맴 돌며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점프하여 쌀통 뒤에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내가 아까 손을 씻으면서 마개를 도로 닫아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그 쥐는 하 수도 시궁창에 살았는데 우리 집으로 기어 나오다가 수채구멍을 열고는 먹 을 것을 찾은 것 같았다. 나는 잔인한 미소를 띄우고 그 고무장갑을 다시 꼈 다. 그리고 역시 비닐을 준비했다. 부엌의 지저분한 물건들일랑 모두 옆으로 치우고 쥐가 나갈만한 문은 모두 닫아버렸다. 숨을만한 구멍도 모두 폐쇄시켜 만반의 전시체제, 사냥준비를 했다. 목표는 쌀통 뒤, 적은 큰 쥐 한 마리, 무기는 위력적인 고무장갑을 낀 나의 이 두 손, 포로수용소는 비닐, 완전한 준비가 끝났다. 그럼 발포~, 아니 쥐란 놈의 습성에 맞게 살금살금 접근하는 기습전이다.

쌀통을 살살 옆으로 치우니 구석의 어둠 속에서 시커먼 두 눈동자 가 나를 표독스럽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 쥐 역시 모든 준비를 갖춘 것 같았 다. 나의 손이 쥐를 살짝 건드렸다. 그때 놀라운 위협의 소리가 들렸다. 그건 쥐가 아니라 한 마리의 암표범이었다! 그 공갈에 나는 조금 당황했지만 이내 여유의 웃음을 띠고 다시 접근했다. 놈은 엄청난 힘으로 나의 손을 타고 넘 어 옆의 항아리 구석에 다시 숨었다. 그러나 나의 추적을 피할 수는 없다. 도망갈 구멍은 모두 막혔고 오직 생과 사, 그 둘뿐인 것이다. 그 좁은 구석에 나는 잽싸게 손을 넣어 쥐를 꽉 움켜잡았다. 단단하고 큼직한 몸뚱아리가 느껴졌다. 그러나 너무 자신만만하고 방심한 탓이었을까, 그 쥐는 나의 엄지 손가락을 힘껏 물고 말았다. 그렇게 고통스럽진 않았지만 풀어진 나의 마음 을 정돈하게 하였다. 나는 쥐를 다시 놓쳐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쥐도 방향을 잘못잡아 설거지통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헤엄치는 놈을 잡을 수도 있었 지만 나는 약간의 겁이랄까, 하는 것을 느꼈고, 그리고 사실 너무 빨라서 잡지 못했다.

몸이 물에 푹 젖은 녀석은 놀랍게도 자기를 여기까지 들어오게 한 수채구멍을 빨리 찾아 마개를 여는 것이 아닌가! 쥐가 그런 일도 할 수 있다니 정말 놀라왔다. 그러나 쥐가 그 구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기회를 놓 치지 않고 나는 주먹으로 녀석을 한 대 먹였다. 그러나 꿈쩍도 않고 쥐는 또 탈출하려고 구멍을 향해 돌진했다. 나는 또 한 대 쳤다. 쥐는 또 덤볐다. 또 쳤다. 이제는 쥐가 지쳤나 보다. 점점 스피드가 늦어졌다. 그래서 발로 수채구 멍을 막고 음식찌꺼기 모으는 바구니로 쥐의 위를 덮쳤다. 바구니 속에 갇힌 쥐는 힘이 빠졌지만 마치 뱀처럼 '쉭쉭' 거리며 나를 위협했다. 정말 사나왔다. 바구니 밑으로 판때기를 밀어 넣어 받치고 녀석을 비닐 봉지에 던져 넣 었다. 그래도 비닐을 기어 나오려고 뛰면서 발버둥을 쳤다.

내가 마침내 쥐를 잡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긴 했다. 쥐와의 투쟁에서 내가 이긴 것이다. 그러나 방심한 틈에 쥐의 습격을 받은 것은 나의 실수였다. 앞으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지에 갇힌 쥐가 자 꾸 꿈틀거렸다. 아까 전에 손가락 물린 데 화가 난 나는 잔인하게 연탄집게 를 들었다. 쳤다. 그리고 또 쳤다. 쥐는 죽어가면서도 계속 쉭쉭거렸다. 나는 골고루 이곳저곳을 연탄집게로 내려쳤다. 드디어 아무 소리도, 움직임도 없 었다. 완전히 죽은 모양이다. 쓰레기통에 역시 갖다 버렸다.

나도 쥐를 많이 잡아오는 동안에 점차 마음이 잔인해졌다. '동물 중에서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놈은 때려잡는다' 이런 생각이 과연 옳은 것일까? 쥐나 바퀴벌레 역시 생명이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인간은 인간중심적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인간에게 유용, 또는 해가 되는 것을 가리니, 그런데 또 이상하게도 인간과 적대 관계에 있는 동물은 의외로 수가 많고 강하며 끈질기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왜 이런 생명을 창조하셨는지 의문이다. 생명이기에 죽여 없애기는 뭐하고, 또 사람이기에 사람을 위해서는 그런 짓을 해야 되고, 뭔가 모순점이 있는 이 세상, 내가 한 일이 과연 선인가, 악인가 판단할 수가 없구나.